숲길 따라 걷는 ‘간신’ 이야기: 뜻밖의 발견과 깊은 성찰

가랑비가 이슬비처럼 소록소록 내리던 어느 봄날, 경주에 자리한 경북천년숲정원을 찾았습니다. 빗방울 흩날리는 풍경은 왠지 모를 고즈넉함을 선사했지만, 사실 오늘은 흙길을 걷는 산행보다는 싱그러운 야생화들을 카메라에 담고 싶은 마음이 더 컸어요. 하지만 세상일이 늘 마음먹은 대로만 흘러가던가요. 어쩌면, 예상치 못한 여정이 더 깊은 울림을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이번 여정에서는 ‘간신’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숲길을 따라 천천히 곱씹어보려 합니다. 왠지 숲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 단어, 하지만 곱씹을수록 흥미로운 연결고리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간신’이라는 이름, 시대를 초월한 그림자

국어사전에서 ‘간신(奸臣)’은 육사신(六邪臣) 중 하나로 ‘간사한 신하’를 뜻합니다. 단순히 권력에 아첨하여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것을 넘어, 때로는 음험한 마음으로, 때로는 달변으로, 때로는 편협한 고집으로 조직과 사회를 좀먹는 존재들을 떠올리게 하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간신’이라는 단어는 끊이지 않고 등장했으며, 인간 사회가 존재하는 한, 그 존재 자체를 완전히 뿌리 뽑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얼마 전, 잠 못 이루던 늦은 밤 TV에서 우연히 민규동 감독의 영화 <姦臣>을 보게 되었습니다. 111만 명이라는 다소 아쉬운 관객 수에 흥행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이 영화를 통해 ‘간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작가적 고민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권력을 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때로는 개인의 영화(榮華)를 위해 타인을 짓밟고, 약자를 유린하며, 힘을 과시하는 모습까지. 어쩌면 이러한 ‘간신’의 행태는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우리 주변에 너무나도 쉽게 발견되는 것은 아닐까요.

공자님께서도 이미 오래전, 다섯 가지 유형의 奸臣을 이야기하셨다고 합니다. 마음을 뒤집어 음험한 자, 달변으로 상대를 현혹하는 자, 고집스럽고 치우친 행동을 일삼는 자, 앎은 많으나 어리석은 자, 그리고 비리를 통해 이익을 취하는 자까지. 오늘날 우리 사회를 둘러봐도 이 다섯 가지 유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모습들이 겹쳐 보이는 것은 비단 저만의 착각일까요?

간신 유형 (공자) 현대 사회에서의 예시
마음을 역으로 가져 음험한 자 은밀한 뒷거래, 배신
사기성이 농후하여 달변인 자 허황된 약속, 교묘한 말솜씨로 대중 현혹
고집이 세며 행동이 한 쪽을 치우치는 자 독단적인 결정, 편협한 시각으로 타인 배척
지식은 충만하나 어리석은 자 탁상공론, 현실과 동떨어진 이론만 주장
비리를 혜택을 누리는 도구로 삼는 자 갑질, 특혜, 금품 로비

숲길 속에서 만난 ‘간신’의 또 다른 모습

조직 사회에서 성공과 권력 획득을 위해 ‘간신’의 행위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논리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보다는 ‘간신’이라는 존재가 우리 삶 곳곳에 스며들어 있을 때, 그것이 노골적으로 악용될 때 가장 큰 짜증과 허탈함을 느낍니다.

과거에는 왕이나 군주를 향했던 ‘간신’의 행태가, 주권이 민주화된 지금의 사회에서는 ‘국민’을 향한 권력자의 간신으로 둔갑하여 횡행하는 모습은 아닌지 되돌아봅니다. 내가 누리는 영화를 위해 타인을 유린하고, 약한 자를 짓밟으며, 나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위들. 이러한 ‘간신’의 계략들은 결국 아전인수(我田引水), 즉 자기 논에 물 대는 격으로, 결국 자신에게 해가 될 뿐이라는 것을 왜 깨닫지 못하는 걸까요.

오늘따라 숲길에 피어난 야생화들이 더욱 싱그럽게 다가옵니다. 삼색버드나무의 앙증맞은 열매, 벚나무의 연분홍 꽃잎, 박태기나무의 보랏빛 물결, 황벽나무의 쌉싸름한 향기, 소래풀의 소담한 모습, 그리고 경북천년숲의 푸른 기운까지. 이 자연 속 생명들은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할미꽃처럼 꿋꿋하게, 때로는 꽃다지처럼 끈질기게, 그리고 목이버섯처럼 묵묵히 제 역할을 다하며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이 숲의 풍경 속에서, 저는 ‘간신’이라는 단어가 지닌 어두운 그림자 대신, 때로는 지혜롭게, 때로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존재들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는 듯합니다.

나의 영달을 위해서가 아니라, 숲을 가꾸고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때로는 험난한 길을 헤쳐나가야 할 때도 있겠지만, 저는 오늘도 이 숲길을 걸으며, ‘간신’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또 다른 의미들을 천천히 곱씹어 봅니다. 어쩌면 우리 주변의 작은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가 건네는 이야기가, 가장 솔직하고 깊은 성찰을 안겨줄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