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청춘의 우정을 그린 작품
한국인과 일본인은 생각이 전혀 달라도 꿈속에서라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면 이를 이루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고, 이치에 맞다.
그는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는 청림을 찾아가 청림이 과거에 했던 말을 되풀이하게 한다.
1932년 타쿠미가 임종할 때 해야 할 일이 두 가지라고 했다.
하나는 감옥에 있는 청림을 찾아가 한국에 와서 처음 들었던 한국어를 알려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소나무.
달항아리에 담긴 백자를 바라보며 눈으로 보는 음악이라고 표현한 타쿠미의 감탄이 인상적이었고, 타쿠미의 형과 친구들은 백자의 아름다움과 일상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문화에 대한 사랑도 인상적이었다.
도자기를 인정해 눈길을 끈다.
백자라는 매체와 독특한 소재의 숲녹지를 통해 당시의 이미지를 차분하게 표현한 점은 다행이다.
일본에서 상영될 수도 있지만, 아주 가난한 나라의 추악한 장면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두 젊은이의 우정을, 아름답지만 산은 헐벗은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조금 아름답게 하려고 노력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 타쿠미의 어머니는 한국인들이 큰 소리로 우는 것이 경솔하다고 말한다.
버릇처럼 말했는데, 타쿠미가 죽었을 때 한적한 곳을 찾아 큰 소리로 통곡하는 장면은 일본의 다정함을 표현한 것 같았다.
하늘이 지진으로 일본인이 피해를 입어도. 포기는 했지만 큰 소리를 지르는 장면을 본 적이 없는데… 그런 면에서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보면 정말 다이내믹하다.
영화는 대체적으로 잔잔하다.
특별한 감정도 재미도 임팩트도 없지만 일본인의 인간적인 면, 정말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는 지극히 인간적인 영화다.
일본 고등학생 필독서로 선정되기도 했지만, 아사카와 타쿠미가 왜 우리 가족을 지키려 하는지 알 수 없었다.
1914년 한국임업연구소에 부임한 타쿠미는 좋아하는 친구 충림을 만나 청나라와 러시아, 일본.
한편 타쿠미는 한국 백자에도 관심이 많다.
국어 공부도 깊었던 타쿠미는 시대와 민족을 초월해 한국의 산을 푸르게 만드는 일에 관심을 기울인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이자 포천광릉수목원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그는 조선 민속문화 진흥에 힘쓰고 조선풍속을 기록하기도 했으며 조선민속미술관 건립에도 앞장섰다.
당시 조선에서는 3.1만세운동 등 항일운동이 격렬해지고 있었고, 일본은 조선총독부를 통해 독재보다는 문화통치를 주창했기 때문에 이들의 설립이 허용된다.
이런 가운데 청림은 본의 아니게 친일파에 빠져 조선 친구들에게 배척을 당하고, 그의 아들 인화마저 청림에 반대하며 항일투쟁에 앞장선다.
조선민속미술관 개관일, 충림은 아들 인화가 던지려는 폭탄을 막았다는 누명을 쓰고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다.
그런 푸른 숲을 안타까움에 바라보며 홀로 열심히 숲을 가꾸고 조선 민속문화에 관한 책을 펴내며 한국의 한 줌 흙이 되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까 고민하다
아사카와 타쿠미의 존재가 크게 미화되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현실적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묘비가 한국에 있다는 사실과 그가 광릉수목원 탄생의 주인공이라는 사실. 나이와 인종을 불문하고 사람은 어떻게 사는가. 보여주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보호 부적을 전달하고 전달하는 일본인 같은 모습. 우리도 좀 겸손해져야 하지 않을까요? 생각해봐 한국인들이 타쿠미에게 몰려와 상여를 들고 죽었다고 말하는 장면도 신선했다.
그리고 마을 아이들에게 돈을 주는 장면이 눈에 띌 정도로 한국적 요소를 잘 표현한 영화라고 칭찬하고 싶다.
나는 방금 인간을 보았다.
오랜만에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에는 그의 묘비에도 많은 비가 내려 풀밭을 푸르게 물들일 것이다.
그날 나는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고민하게 만드는 사람을 만났다.